우리가 잃어버린 밤의 리듬, 이중 수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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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깨어나는 당신, 혹시 불면증이 아니라
인류의 잃어버린 ‘원래의 잠’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당신의 밤에 숨겨진 고대의 리듬을 만나보십시오.

고요한 새벽 2시.
세상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 있을 것만 같은 시간, 당신은 어김없이 눈을 뜹니다.

화장실에 가고 싶었던 것도, 악몽을 꾼 것도 아닙니다.
그저 너무나 자연스럽게, 마치 알람이라도 맞춘 듯 정신이 말똥말똥해집니다.
“또 깼네… 오늘 밤도 글렀구나.”
시계를 확인하는 순간, 불안감과 절망감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우리는 이러한 중간 각성 현상을 당연하게 ‘불면증’의 한 종류라고 진단하고,
어떻게든 이 ‘끊어진 잠’을 하나로 이어 붙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합니다.

하지만, 만약 이 한밤중의 각성이 비정상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몸속 깊이 각인된 가장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수면 패턴의 흔적이라면 어떨까요?

우리는 ‘건강한 잠 = 8시간 동안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자는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학자 로저 에커치(Roger Ekirch) 교수는 그의 저서
“하루의 마감(At Day’s Close: Night in Times Past)”에서 충격적인 주장을 제기합니다.

산업화 이전 시대의 인류는 오늘날 우리처럼 8시간 통잠을 자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해가 지면 서너 시간 잠을 자고 첫 번째 잠
한밤중에 한두 시간 깨어 있다가, 다시 새벽녘에 두세 시간 잠을 자는 두 번째 잠,
이중 수면패턴을 가졌다는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깨어있는 그 한밤의 시간을 불안과 초조함 속에서 보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시간은 하루 중 가장 평화롭고, 사색적이며, 창의적인 시간이었습니다.
조용한 어둠 속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기도를 하고, 배우자와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이 ‘깨어있는 휴식’의 시간은 자기 자신과 가장 깊이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역사 속 증거: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잠들었나?

문학 속에 숨겨진 단서들

로저 에커치 교수의 주장은 단순한 추측이 아닙니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부터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이르기까지,
500개가 넘는 고대 및 중세 문헌에서 ‘첫 번째 잠’과 ‘두 번째 잠’을 언급하는 표현을 발견했습니다.

16세기 영국의 한 의사는 “두 번의 잠 사이의 시간이 공부하고 사색하기에 가장 좋은 때”라고 기록했습니다.
프랑스의 한 의사는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부부에게 “첫 번째 잠을 자고 난 뒤, 피로가 풀리고 기운이 났을 때 사랑을 나누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조언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기록들은 이중 수면이 특정 계층의 유별난 습관이 아니라, 인공조명이 보급되기 전 인류의 보편적인 현상이었음을 증명합니다.

일상 기록에 담긴 밤의 풍경

에커치 교수는 문학 작품뿐만 아니라, 법원 기록, 개인적인 일기, 편지 등에서도 수많은 증거를 찾아냈습니다.
17세기 영국의 한 법원 기록에는, 한밤중에 깨어나 옆집의 소란을 들었다는 증언이 등장하는데,
이는 당시 사람들이 한밤중에 깨어 있는 것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16세기 이탈리아의 한 장인은 자신의 일기에, 첫 번째 잠에서 깨어나 아내와 사랑을 나누고,
다시 잠들기 전에 어젯밤에 꾼 꿈에 대해 생각했다고 적었습니다.
그들은 이 시간을 ‘불면’으로 여기며 고통스러워한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다양한 활동으로 채웠던 것입니다.

현대에 남은 인류학적 증거

현대 문명의 영향을 덜 받은 일부 원주민 사회에서는 여전히 이중 수면과 유사한 패턴이 관찰됩니다.
나이지리아의 티브(Tiv)족이나 마다가스카르의 일부 부족들은 저녁에 잠시 잠을 잔 뒤,
한밤중에 일어나 사교 활동을 하거나 일을 하고, 다시 새벽에 잠드는 분절된 수면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여전히 수만 년 동안 이어져 온 이 고대의 리듬을 기억하고 있지만,
현대 사회의 인공적인 스케줄이 그 기억을 억지로 억누르고 있는 셈입니다.

과학이 밝혀낸 이중 수면의 비밀

토머스 웨어 박사의 ‘어둠 실험’

1990년대 초, 국립정신건강연구소의 정신과 의사 토머스 웨어(Thomas Wehr) 박사는 한 가지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는 한 그룹의 남성들을 한 달 동안 인공조명이 전혀 없는 환경에서 생활하게 했습니다.

3주가 지나자,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그들의 수면 패턴이 역사 문헌에 기록된 ‘이중 수면’과 거의 똑같이 변한 것입니다.
그들은 4시간 정도 ‘첫 번째 잠’을 자고, 한밤중에 1~3시간 정도 완전히 깨어 있는 시간을 가진 뒤, 다시 4시간 정도 ‘두 번째 잠’을 잤습니다.
이 실험은 인공조명이라는 외부 자극이 제거되면, 인간의 몸은 자연스럽게 이중 수면 패턴으로 회귀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최초의 사례였습니다.

‘깨어있는 휴식’의 뇌파 변화

웨어 박사의 실험에서 더 흥미로웠던 점은, 참가자들이 한밤중에 깨어 있는 동안 느꼈던 감정과 뇌파의 변화였습니다.
그들은 이 시간을 불안해하거나 지루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명상을 하는 것처럼 마음이 고요하고 평화로웠다”고 보고했습니다.

실제로 이 시간 동안 측정한 그들의 뇌파는,
깊은 휴식과 명상 상태에서 나타나는 ‘알파파(Alpha wave)’가 우세하게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뇌가 완전히 깨어난 것도, 잠든 것도 아닌, 독특하고 창의적인 ‘제3의 상태’였던 것입니다.

한밤의 명상 호르몬, 프롤락틴

또한, 웨어 박사는 이 ‘깨어있는 휴식’ 시간 동안 참가자들의 혈액에서 ‘프롤락틴(Prolactin)’이라는 호르몬 수치가 눈에 띄게 증가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프롤락틴은 우리에게 깊은 안정감과 만족감, 평온함을 느끼게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즉, 이중 수면 패턴에서 한밤중에 깨어 있는 시간은, 우리 몸이 스스로 ‘천연 안정제’를 분비하여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마음을 치유하는 시간이었던 셈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잠을 잃어버렸는가?

밤을 정복한 빛, 자연의 리듬을 파괴하다

수만 년 동안 인류에게 밤은 휴식과 정지의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19세기 말, 에디슨이 발명한 백열전구는 인류의 밤을 송두리리째 바꾸어 놓았습니다.
밤에도 대낮처럼 환한 빛에 노출되면서, 우리 뇌는 언제 멜라토닌을 분비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러운 이중 수면 패턴은 설 자리를 잃었고, 우리는 밤늦게까지 활동하다가 지쳐 쓰러지듯 잠드는 부자연스러운 수면 습관에 길들여지기 시작했습니다.

공장의 스케줄에 맞춰진 ‘8시간 통잠’

인공조명과 함께, 산업혁명은 우리의 수면 패턴을 획일화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공장 시스템은 노동자들에게 정해진 시간에 맞춰 일하고, 정해진 시간 동안 쉬도록 요구했습니다.

‘8시간 노동, 8시간 여가, 8시간 수면’이라는 구호 아래,
‘8시간 통잠’은 가장 효율적이고 이상적인 수면 방식으로 사회 전체에 각인되기 시작했습니다.
한밤중에 깨어 사색을 즐기는 것은 더 이상 낭만적인 행위가 아니라, 다음 날의 생산성을 저해하는 ‘비효율적이고 게으른’ 행위로 치부되었습니다.

‘시간은 돈이다’, 휴식을 죄악시하는 문화

산업 자본주의는 “시간은 돈이다”라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낳았습니다.
이 관점에서, 잠은 아무런 생산적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낭비되는 시간’으로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밤샘 근무와 야근이 성실함의 훈장처럼 여겨지는 문화 속에서, 우리는 잠을 줄이고 휴식을 반납하는 것을 성공을 위한 당연한 희생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잠과 휴식마저도 효율성과 생산성의 잣대로 평가하는 이 사회적 강박이, 우리에게서 밤의 평온을 앗아가고, 자연스러운 생체 리듬을 병으로 만들어버린 진짜 범인일지도 모릅니다.

불면의 심리학: 당신의 밤이 말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

과각성 불면: “나는 지금 안전하지 않아요”

침대에 눕기만 하면 온갖 생각이 꼬리를 물고 잠들기 힘든 ‘과각성 불면’은,
당신의 뇌가 끊임없이 “나는 지금 안전하지 않아!”라고 외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당신의 뇌는 잠재적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잠드는 것을 ‘무방비 상태가 되는 위험한 행위’로 간주하고 당신을 깨어 있게 만들려고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 경우, 당신의 밤은 “당신의 삶에서 무엇이 당신을 이토록 불안하게 만드나요?”라고 묻고 있습니다.

조기 각성 불면: “나는 내일 아침을 맞이하고 싶지 않아요”

꼭두새벽에 눈이 떠져 다시 잠들지 못하는 ‘조기 각성 불면’은, 종종 우울감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이는 “나는 더 이상 이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운 하루를 다시 시작하고 싶지 않아요”라는 당신의 무의식적인 거부감의 표현일 수 있습니다.

새로운 아침이 희망이 아닌 스트레스의 시작으로 느껴질 때,
당신의 마음은 차라리 어둠 속에 더 머무르고 싶어 합니다.
이 경우, 밤은 “당신의 삶에서 무엇이 당신의 기쁨과 활력을 앗아가고 있나요?”라고 묻고 있습니다.

수면 유지 불면: “아직 풀지 못한 응어리가 있어요”

밤새 여러 번 깨고, 한번 깨면 다시 잠들기 힘든 ‘수면 유지 불면’은,
당신의 마음속에 아직 처리되지 않은 ‘감정의 응어리’가 남아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낮 동안 억눌렀던 분노, 슬픔, 서운함과 같은 감정들이, 의식의 통제가 약해진 밤이 되면 수면 위로 떠올라 당신을 흔들어 깨우는 것입니다.
이 경우, 당신의 밤은 “더 이상 이 감정을 외면하지 마세요. 이제 그 상처를 마주하고 보듬어줄 시간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치유의 시작: 잃어버린 밤의 리듬을 되찾는 법

1단계: 수용하기, 중간 각성을 친구로 맞이하기

이 모든 이야기의 결론은 하나입니다.
한밤중에 잠에서 깨는 당신, 당신은 비정상이 아닙니다.
이제’중간 각성을 불면증이라는 적으로 규정하고 싸우는 것을 멈추세요.

대신, 오랜만에 찾아온 반가운 친구처럼 맞이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저항과 불안 대신, ‘수용’과 ‘환대’의 태도를 가질 때,
당신의 밤은 고통의 시간에서 평화의 시간으로 변모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2단계: 빛과의 단절, 고대의 밤 재현하기

당신의 몸이 고대의 리듬을 기억하고 있다면, 그 리듬이 편안하게 연주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우리 조상들의 밤에 없었던 것, 바로 ‘인공조명’입니다.

잠들기 최소 1~2시간 전부터는 집안의 모든 밝은 조명을 끄고,
촛불이나 아주 희미한 스탠드 불빛 아래서 생활하며, 인위적으로 ‘고대의 밤’을 재현해보세요.
밤의 시간을 온전한 어둠에게 돌려줄 때, 당신의 몸속에 잠들어 있던 자연스러운 수면 시계도 다시 깨어나 작동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3단계: ‘깨어있는 휴식’을 선물로 바꾸기

한밤중에 깼을 때, 그 시간을 당신 자신을 위한 온전한 ‘선물’로 활용하는 기술을 익혀보세요.
침실 밖 편안한 의자에 앉아 따뜻한 허브차를 마시거나,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명상을 하거나, 일기를 쓰는 것.
이 모든 것이 훌륭한 ‘깨어있는 휴식’이 될 수 있습니다.
잠 못 이루는 밤이, 당신의 인생을 가장 풍요롭게 만드는 시간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당신은 틀리지 않았다

정상 수면이라는 사회적 허상

우리는 ‘8시간 통잠’이라는 사회가 만든 획일적인 정상의 기준에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끼워 맞추며 고통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그 기준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허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밤중에 깨어나는 당신의 몸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그 몸이야말로, 잃어버린 인간 본연의 리듬을 되찾으라고 외치고 있는 가장 정직한 목소리일지도 모릅니다.

내 몸의 리듬을 존중하는 삶

이제 남들의 기준이나 의학적 정의에 휘둘리지 말고, 당신 몸의 고유한 리듬에 귀 기울여 보세요.
당신의 몸이 두 번 나눠 자는 것을 더 편안하게 느낀다면, 그것이 바로 당신의 정상입니다.
불면을 치유하는 과정은, 내 몸을 사회의 기준에 억지로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내 몸의 고유성을 지켜주고 존중하는 과정입니다.

당신의 밤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다

오늘 밤, 또다시 새벽에 눈이 떠진다면, 더 이상 그 시간을 불면의 고통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대신, 그 시간에 당신만의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는 것은 어떨까요?

‘나를 만나는 시간’, ‘고요와 함께하는 시간’.
이름이 바뀌면, 경험의 의미도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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